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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쌀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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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11 13:02
도화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64  

도화주
 
 
 
 
 
무릉도원,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살다
매화주가 늦겨울의 세시주라고 한다면, 봄철의 가향주는 어떤 술이 적격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철이면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살구꽃과 자두꽃을 선호하지만 앵도화를 비롯하여 배꽃, 사과꽃, 모과꽃, 진달래꽃, 자두꽃 등 봄꽃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이들 꽃을 주재로 한 가향주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우선순위를 매기기 아쉬울 정도로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매화주에 대한 감흥이 사라질 때쯤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봄철 술이 행화주(杏花酒)이다. 개인적인 견해다. 헌데 유독 도화주에 대한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같은 가향주류인 두견주나 국화주 보다 더욱 환상을 갖게 되는 까닭이 아마도 복숭아를 생각할 때마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천도(天桃)’가 연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이제나 “번민의 속세를 떠나 천연 그대로의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소위 신선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무릉도원의 세계 말이다. 무릉도원이란, 말 그대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산다는 뜻이니,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대 유명한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란 시에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방긋 웃고 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복사꽃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이 곳은 볖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고 하여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운 별천지, 곧 무릉도원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천상(天上)에 천당(天堂)이요 천하(天下)에 도원(桃園)”이라는 말로 동양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 까닭에선지 꿈에 무릉도원을 보았다는 이가 있었으니, 조선조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시문서화에 능했고, 특히 당대 제일의 서예가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이다. 그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에 ‘정묘년 4월 20일밤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뜩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3리는 될 듯 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 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는 내용이다.
 
이 무릉도원이 구체화 된 그림이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요, 그 배경에는 이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있는데, “길을 잃은 한 어부가 복숭아나무숲을 만나, 배를 버리고 그 틈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향기로운 풀과 어지러이 꽃 이파리들이 날리는데, 이윽고 동굴이 나오고, 그 굴을 빠져나오자 평화스런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으며,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바깥세상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 위나라를 거쳐 진(晋)나라다’고 하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저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마신 도화주
도화주란 매화에 뒤이어 피는 복숭아꽃 ‘도화(桃花)’를 이용한 술이라고 한데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애칭으로 ‘벽도화주(碧桃花酒)’ ‘백화주(百花酒)’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도화주는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빚어 마셨다고 전하는데, 서울에서는 북둔의 도화(桃花)를 배경으로 한 화류놀이가 성행했고, 필운대의 행화(杏花)와 흥인문 밖의 양류(楊柳)가 승지로 꼽혀, 이 일대에서는 각종 가향주가 등장,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의 풍류를 주도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인 <고사촬요>를 비롯하여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부인필지>, <동국세시기>, <임원십육지>, <김승지댁주방문> 등 여러 옛 문헌에 도화주 방문이 수록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문헌마다 재료의 비율이나 빚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기본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산림경제>의 도화주 방문을 보면, 정월에 밑술(술밑)을 만들어 두었다가 복숭아꽃이 피면 덧술을 하는데, 깨끗한 꽃을 정선하여 밑술과 고두밥, 누룩, 끓여 식힌 물과 함께 버무려 빚는다. 이어 버무려 빚은 덧술을 안친 술독 안에 꽃가지를 꺾어다 꽂아 두고 밀봉하여 발효시켰다가, 복숭아꽃이 시들고 열매가 맺혀 커갈 무렵인 초여름에 마시는 술인데, 서늘한 곳에 두고 익히는 까닭에 길게는 90~120일이 걸리는 장기발효주라는 점에서 그 특징과 향기, 맛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도화주는 복숭아꽃이 필 때 빚는 계절주이자, 여름철 더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즐기면서 술의 향기와 맛을 통해서 복숭아꽃이 핀 지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가향주(佳香酒)요, 이 도화주를 즐기는 날은 모두들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사는 세계만이 꼭 이상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주막에서 시절주(時節酒)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사라진 술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자가양조를 금하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조단속이 빌미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듯 아름다운 풍류와 자연을 품에 안을 여유와 낭만이 사라져버렸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옛 사람들의 풍속과 풍류를 동경해서만은 아닌, 옛 사람들의 술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되찾고, 아름다운 술향기를 널리 일깨우고자 했던 시도가 도화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들었는데, 고서를 통해 재현해 본 도화주는 지금의 술이 갖지 못하는 방향과 함께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이 있었다. 다가 올 새 봄의 만개한 복사꽃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술을 빚기 시작하여, 무더워지는 초여름 때 지난 봄의 정취와 아름다운 꽃향기를 술에 담아 내놓을 줄 아는 조상들의 지혜와 낭만,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정성을 두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몇 이랴.
무릉도원,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살다
매화주가 늦겨울의 세시주라고 한다면, 봄철의 가향주는 어떤 술이 적격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철이면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살구꽃과 자두꽃을 선호하지만 앵도화를 비롯하여 배꽃, 사과꽃, 모과꽃, 진달래꽃, 자두꽃 등 봄꽃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이들 꽃을 주재로 한 가향주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우선순위를 매기기 아쉬울 정도로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매화주에 대한 감흥이 사라질 때쯤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봄철 술이 행화주(杏花酒)이다. 개인적인 견해다. 헌데 유독 도화주에 대한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같은 가향주류인 두견주나 국화주 보다 더욱 환상을 갖게 되는 까닭이 아마도 복숭아를 생각할 때마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천도(天桃)’가 연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이제나 “번민의 속세를 떠나 천연 그대로의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소위 신선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무릉도원의 세계 말이다. 무릉도원이란, 말 그대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산다는 뜻이니,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대 유명한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란 시에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방긋 웃고 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복사꽃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이 곳은 볖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고 하여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운 별천지, 곧 무릉도원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천상(天上)에 천당(天堂)이요 천하(天下)에 도원(桃園)”이라는 말로 동양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 까닭에선지 꿈에 무릉도원을 보았다는 이가 있었으니, 조선조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시문서화에 능했고, 특히 당대 제일의 서예가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이다. 그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에 ‘정묘년 4월 20일밤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뜩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3리는 될 듯 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 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는 내용이다.
 
이 무릉도원이 구체화 된 그림이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요, 그 배경에는 이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있는데, “길을 잃은 한 어부가 복숭아나무숲을 만나, 배를 버리고 그 틈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향기로운 풀과 어지러이 꽃 이파리들이 날리는데, 이윽고 동굴이 나오고, 그 굴을 빠져나오자 평화스런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으며,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바깥세상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 위나라를 거쳐 진(晋)나라다’고 하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저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마신 도화주
도화주란 매화에 뒤이어 피는 복숭아꽃 ‘도화(桃花)’를 이용한 술이라고 한데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애칭으로 ‘벽도화주(碧桃花酒)’ ‘백화주(百花酒)’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도화주는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빚어 마셨다고 전하는데, 서울에서는 북둔의 도화(桃花)를 배경으로 한 화류놀이가 성행했고, 필운대의 행화(杏花)와 흥인문 밖의 양류(楊柳)가 승지로 꼽혀, 이 일대에서는 각종 가향주가 등장,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의 풍류를 주도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인 <고사촬요>를 비롯하여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부인필지>, <동국세시기>, <임원십육지>, <김승지댁주방문> 등 여러 옛 문헌에 도화주 방문이 수록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문헌마다 재료의 비율이나 빚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기본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산림경제>의 도화주 방문을 보면, 정월에 밑술(술밑)을 만들어 두었다가 복숭아꽃이 피면 덧술을 하는데, 깨끗한 꽃을 정선하여 밑술과 고두밥, 누룩, 끓여 식힌 물과 함께 버무려 빚는다. 이어 버무려 빚은 덧술을 안친 술독 안에 꽃가지를 꺾어다 꽂아 두고 밀봉하여 발효시켰다가, 복숭아꽃이 시들고 열매가 맺혀 커갈 무렵인 초여름에 마시는 술인데, 서늘한 곳에 두고 익히는 까닭에 길게는 90~120일이 걸리는 장기발효주라는 점에서 그 특징과 향기, 맛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도화주는 복숭아꽃이 필 때 빚는 계절주이자, 여름철 더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즐기면서 술의 향기와 맛을 통해서 복숭아꽃이 핀 지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가향주(佳香酒)요, 이 도화주를 즐기는 날은 모두들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사는 세계만이 꼭 이상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주막에서 시절주(時節酒)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사라진 술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자가양조를 금하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조단속이 빌미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듯 아름다운 풍류와 자연을 품에 안을 여유와 낭만이 사라져버렸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옛 사람들의 풍속과 풍류를 동경해서만은 아닌, 옛 사람들의 술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되찾고, 아름다운 술향기를 널리 일깨우고자 했던 시도가 도화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들었는데, 고서를 통해 재현해 본 도화주는 지금의 술이 갖지 못하는 방향과 함께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이 있었다. 다가 올 새 봄의 만개한 복사꽃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술을 빚기 시작하여, 무더워지는 초여름 때 지난 봄의 정취와 아름다운 꽃향기를 술에 담아 내놓을 줄 아는 조상들의 지혜와 낭만,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정성을 두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몇 이랴.
무릉도원,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살다
매화주가 늦겨울의 세시주라고 한다면, 봄철의 가향주는 어떤 술이 적격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철이면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살구꽃과 자두꽃을 선호하지만 앵도화를 비롯하여 배꽃, 사과꽃, 모과꽃, 진달래꽃, 자두꽃 등 봄꽃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이들 꽃을 주재로 한 가향주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우선순위를 매기기 아쉬울 정도로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매화주에 대한 감흥이 사라질 때쯤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봄철 술이 행화주(杏花酒)이다. 개인적인 견해다. 헌데 유독 도화주에 대한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같은 가향주류인 두견주나 국화주 보다 더욱 환상을 갖게 되는 까닭이 아마도 복숭아를 생각할 때마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천도(天桃)’가 연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이제나 “번민의 속세를 떠나 천연 그대로의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소위 신선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무릉도원의 세계 말이다. 무릉도원이란, 말 그대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산다는 뜻이니,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대 유명한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란 시에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방긋 웃고 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복사꽃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이 곳은 볖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고 하여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운 별천지, 곧 무릉도원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천상(天上)에 천당(天堂)이요 천하(天下)에 도원(桃園)”이라는 말로 동양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 까닭에선지 꿈에 무릉도원을 보았다는 이가 있었으니, 조선조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시문서화에 능했고, 특히 당대 제일의 서예가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이다. 그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에 ‘정묘년 4월 20일밤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뜩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3리는 될 듯 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 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는 내용이다.
 
이 무릉도원이 구체화 된 그림이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요, 그 배경에는 이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있는데, “길을 잃은 한 어부가 복숭아나무숲을 만나, 배를 버리고 그 틈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향기로운 풀과 어지러이 꽃 이파리들이 날리는데, 이윽고 동굴이 나오고, 그 굴을 빠져나오자 평화스런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으며,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바깥세상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 위나라를 거쳐 진(晋)나라다’고 하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저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마신 도화주
도화주란 매화에 뒤이어 피는 복숭아꽃 ‘도화(桃花)’를 이용한 술이라고 한데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애칭으로 ‘벽도화주(碧桃花酒)’ ‘백화주(百花酒)’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도화주는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빚어 마셨다고 전하는데, 서울에서는 북둔의 도화(桃花)를 배경으로 한 화류놀이가 성행했고, 필운대의 행화(杏花)와 흥인문 밖의 양류(楊柳)가 승지로 꼽혀, 이 일대에서는 각종 가향주가 등장,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의 풍류를 주도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인 <고사촬요>를 비롯하여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부인필지>, <동국세시기>, <임원십육지>, <김승지댁주방문> 등 여러 옛 문헌에 도화주 방문이 수록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문헌마다 재료의 비율이나 빚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기본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산림경제>의 도화주 방문을 보면, 정월에 밑술(술밑)을 만들어 두었다가 복숭아꽃이 피면 덧술을 하는데, 깨끗한 꽃을 정선하여 밑술과 고두밥, 누룩, 끓여 식힌 물과 함께 버무려 빚는다. 이어 버무려 빚은 덧술을 안친 술독 안에 꽃가지를 꺾어다 꽂아 두고 밀봉하여 발효시켰다가, 복숭아꽃이 시들고 열매가 맺혀 커갈 무렵인 초여름에 마시는 술인데, 서늘한 곳에 두고 익히는 까닭에 길게는 90~120일이 걸리는 장기발효주라는 점에서 그 특징과 향기, 맛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도화주는 복숭아꽃이 필 때 빚는 계절주이자, 여름철 더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즐기면서 술의 향기와 맛을 통해서 복숭아꽃이 핀 지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가향주(佳香酒)요, 이 도화주를 즐기는 날은 모두들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사는 세계만이 꼭 이상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주막에서 시절주(時節酒)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사라진 술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자가양조를 금하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조단속이 빌미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듯 아름다운 풍류와 자연을 품에 안을 여유와 낭만이 사라져버렸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옛 사람들의 풍속과 풍류를 동경해서만은 아닌, 옛 사람들의 술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되찾고, 아름다운 술향기를 널리 일깨우고자 했던 시도가 도화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들었는데, 고서를 통해 재현해 본 도화주는 지금의 술이 갖지 못하는 방향과 함께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이 있었다. 다가 올 새 봄의 만개한 복사꽃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술을 빚기 시작하여, 무더워지는 초여름 때 지난 봄의 정취와 아름다운 꽃향기를 술에 담아 내놓을 줄 아는 조상들의 지혜와 낭만,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정성을 두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몇 이랴.
무릉도원,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살다
 
매화주가 늦겨울의 세시주라고 한다면, 봄철의 가향주는 어떤 술이 적격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철이면 갖가지 꽃들이 앞다퉈 피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살구꽃과 자두꽃을 선호하지만 앵도화를 비롯하여 배꽃, 사과꽃, 모과꽃, 진달래꽃, 자두꽃 등 봄꽃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이들 꽃을 주재로 한 가향주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우선순위를 매기기 아쉬울 정도로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매화주에 대한 감흥이 사라질 때쯤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봄철 술이 행화주(杏花酒)이다. 개인적인 견해다. 헌데 유독 도화주에 대한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같은 가향주류인 두견주나 국화주 보다 더욱 환상을 갖게 되는 까닭이 아마도 복숭아를 생각할 때마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천도(天桃)’가 연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이제나 “번민의 속세를 떠나 천연 그대로의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소위 신선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무릉도원의 세계 말이다. 무릉도원이란, 말 그대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원에 묻혀 산다는 뜻이니,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대 유명한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란 시에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방긋 웃고 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복사꽃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이 곳은 볖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고 하여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운 별천지, 곧 무릉도원을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천상(天上)에 천당(天堂)이요 천하(天下)에 도원(桃園)”이라는 말로 동양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 까닭에선지 꿈에 무릉도원을 보았다는 이가 있었으니, 조선조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시문서화에 능했고, 특히 당대 제일의 서예가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이다. 그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에 ‘정묘년 4월 20일밤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뜩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3리는 될 듯 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 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는 내용이다.
 
이 무릉도원이 구체화 된 그림이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요, 그 배경에는 이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있는데, “길을 잃은 한 어부가 복숭아나무숲을 만나, 배를 버리고 그 틈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향기로운 풀과 어지러이 꽃 이파리들이 날리는데, 이윽고 동굴이 나오고, 그 굴을 빠져나오자 평화스런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으며,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바깥세상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 위나라를 거쳐 진(晋)나라다’고 하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저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마신 도화주
 
도화주란 매화에 뒤이어 피는 복숭아꽃 ‘도화(桃花)’를 이용한 술이라고 한데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애칭으로 ‘벽도화주(碧桃花酒)’ ‘백화주(百花酒)’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도화주는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 초기부터 개성지방에서 즐겨 빚어 마셨다고 전하는데, 서울에서는 북둔의 도화(桃花)를 배경으로 한 화류놀이가 성행했고, 필운대의 행화(杏花)와 흥인문 밖의 양류(楊柳)가 승지로 꼽혀, 이 일대에서는 각종 가향주가 등장,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의 풍류를 주도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인 <고사촬요>를 비롯하여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부인필지>, <동국세시기>, <임원십육지>, <김승지댁주방문> 등 여러 옛 문헌에 도화주 방문이 수록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문헌마다 재료의 비율이나 빚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기본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산림경제>의 도화주 방문을 보면, 정월에 밑술(술밑)을 만들어 두었다가 복숭아꽃이 피면 덧술을 하는데, 깨끗한 꽃을 정선하여 밑술과 고두밥, 누룩, 끓여 식힌 물과 함께 버무려 빚는다. 이어 버무려 빚은 덧술을 안친 술독 안에 꽃가지를 꺾어다 꽂아 두고 밀봉하여 발효시켰다가, 복숭아꽃이 시들고 열매가 맺혀 커갈 무렵인 초여름에 마시는 술인데, 서늘한 곳에 두고 익히는 까닭에 길게는 90~120일이 걸리는 장기발효주라는 점에서 그 특징과 향기, 맛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도화주는 복숭아꽃이 필 때 빚는 계절주이자, 여름철 더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즐기면서 술의 향기와 맛을 통해서 복숭아꽃이 핀 지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가향주(佳香酒)요, 이 도화주를 즐기는 날은 모두들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사는 세계만이 꼭 이상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주막에서 시절주(時節酒)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사라진 술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자가양조를 금하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조단속이 빌미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듯 아름다운 풍류와 자연을 품에 안을 여유와 낭만이 사라져버렸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옛 사람들의 풍속과 풍류를 동경해서만은 아닌, 옛 사람들의 술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되찾고, 아름다운 술향기를 널리 일깨우고자 했던 시도가 도화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들었는데, 고서를 통해 재현해 본 도화주는 지금의 술이 갖지 못하는 방향과 함께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이 있었다. 다가 올 새 봄의 만개한 복사꽃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술을 빚기 시작하여, 무더워지는 초여름 때 지난 봄의 정취와 아름다운 꽃향기를 술에 담아 내놓을 줄 아는 조상들의 지혜와 낭만,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정성을 두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몇 이랴.
 
덧술 안치는 모습. 마지막에 꽃가지를 덧술 위에 박아놓는다.
 
도화주 만들어보기
 
옛 문헌 가운데 <부인필지(婦人必知)>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주방문을 근거로 재현했던 도화주는 부의와 함께 섬유질만 남은 복숭아꽃잎이 주면(酒面)에 뜨는데, 그 빛깔은 마치 하늘하늘한 잠자리 날개와 같다. 술 빛깔 또한 맑고 투명하며 은은한 방향(芳香)이 코를 찌르는 명주(銘酒)였다. 도화주를 백화주(白花酒)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녀필지>를 근거로 한 도화주 빚는 법을 소개하면, 밑술을 빚을 때 주재료인 쌀과 물의 양이 동량으로 2말 5되이다. 멥쌀을 매우 희게 씻어 불렸다가 건져서 가루로 빻아서 물에 풀고 끓여 죽을 쑨다. 물과 쌀 양이 동량이므로 죽을 쑤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따른다. 따라서 불 지핀 솥에 물을 붓고 그 물이 따뜻할 때 1말 5되 정도를 준비한 분량의 쌀가루에 붓고 개어서 아이죽을 만든 후, 솥의 물이 팔팔 끓으면 아이죽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저어주는데, 센 불로 단시간에 끓여서 커다란 기포가 터지도록 충분히 끓여야 한다. 또 죽은 충분히 차게 식힌 후에 누룩과 밀가루 각 1되를 고루 섞어 버무리도록 하고, 술독은 찬 곳에 두고 이불로 싸매서 천천히 발효시켜야 한다. 덧술은 멥쌀과 찹쌀 각 3말을 매우 희게 씻어 불렸다가, 건져서 고두밥을 각각 짓고 차게 식으면 밑술과 합하여 술을 빚는데, 팔팔 끓인 물 3말 정도를 섞어 빚고 덧술을 빚을 때는 일체의 날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특히 복숭아꽃의 꽃받침은 술이 지저분해지는 원인이 되므로 반드시 떼어내야 한다. 꽃가지와 함께 흐르는 물에 한번 씻어서 먼지나 흙 등 이물질을 제거한 뒤, 물기를 완전히 없앤 후에 사용한다. 복숭아꽃은 담홍색꽃(紅桃花)과 흰색꽃(白桃花)이든 다 사용할 수 있다. 도화주는 다른 꽃에 비해 많이 넣어도 무방하다. 또 추가하는 물을 적게 쓸수록 그 맛과 향이 좋아지는 특징이 있다.
 
발효 후 완성된 모습.
 
 
 
 
 
그러기에 조선시대 문인 이경석(1595~1671)의 문집 <백헌선생집>에 수록된 “4월에 유여해가 도화주를 가지고 왔다(四月 柳汝晦携桃花酒來餉)”라는 제하의 시(詩)에,
“처음으로 도화주 맛을 알았으니/죽엽주만 자랑하지 말게나/가지가 비도록 좋은 술에 들어가/봄이 다하니 꽃잎만 뜨네/잠시 어여쁜 빛깔을 먼저 보고/처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알았네/슬픈 생각은 차차 풀어질 수 있겠네/그대와 다시 술을 기울이고 있으니”
라고 하여 도화주를 소개하고, 그 빛깔과 향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 당시에도 선비와 문인들 사이에서 감상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도 도화주에 대한 감상을 읊은 적이 있는데, 그 시인 즉 ‘도화주음(桃花酒飮)’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 빛 푸르르고 천지에 꽃물 들 때
기울이는 술잔 속에 짧은 봄날이 못내 아쉽다
잔에 뜬 하얀 복사꽃 아롱다롱 날릴듯하고.

이렇듯 도화주는 가향주의 참맛과 정취를 즐기기에 그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굳이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이들의 감흥을 돋궈줄 예인(藝人)의 악(樂)이다. 거문고라면 더 바랄 것 없겠거니와 가야금이나 대금의 한자락이 은근하게 깔리는 분위기이다. 그러니 이런 술자리의 감흥에 젖게 되면, 그 어떤 술자리도 시시해지게 된다. 여기에 술주정이 따를 리 만무하고, 언쟁이 있을 수 없다. 술자리는 이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의 집안과 가문에 새로운 전통으로써 도화주와 같은 가향주가 ‘가양주’로 뿌리내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가양주문화를 반석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전통주 대중화’와 세계화 대열에 동참해 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전통문화는 그 나라의 국민이 가꾸고 지켜 키워나가는 것이며, 그 가치부여에 따라서는 세계의 문화유산이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캐스트- 글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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